김명희의 상상적 리얼리즘과 데자뷰적 비전

미술전문가이거나 문외한이거나 김명희의 그림 앞에선 스스로를 무장해제시키며, 자기정화의 국면으로 진입케 하는 희귀한 경험을 맛보게 된다.  김명희 그림의 이러한 매혹은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화가의 아내로서 그림 그리기

김명희의 작품세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녀 삶의 여정을 더듬어 보자. 김명희의 삶이 특이할 뿐 아니라 그녀만큼 삶과 작업이 하나의 총체를 이루며 자리를 잡아가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예술가의 작업을 논하는 경우, 그가 남성 아닌 여성작가라면 그녀의 삶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부계사회의 성차별 이데올 로기 속에서 여성의 삶의 형태가 그녀의 행동반경을 규정하고 작업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특정사회 속에서 여성이 여성인 동시에 예술가라는 특수한 여건을 어떻게 정당화시켜 왔으며, 미술사와 이념구축에 어떻게 관여하였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여성 미술과 여성화가의 논의에 관건이 되는 것이다.

김명희는 1949년 서울 출생으로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일본과 영국에 살게 되었다.

귀국 후 이화여고를 거쳐 서울대학 회화과에 입학하였다. 대학시절 '서구지향적 해바라 기의 모순'을 발견하고 한국적 미에 심취, 대학원 논문으로 <화각공예에 나타난 문양화 연구>를 썼다. 72년 독일문화원에서 첫 개인전을 갖고, 73년 이화여고 미술교사로 재직 하면서 김차섭을 알게 되었다. 75년 '표현그룹' 일원으로 활약하다가 뉴욕으로 건너가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수학한다. 76년 뉴욕시청에서 김차섭과 결혼하고, 화가촌 소호에 정착한다.  '화가부부가 겪는 특유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김명희는 학업을 중단하고 뉴욕 한국일보 지사에 근무한다. 78년 직업적 경제적 자유를 위하여 신문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인 의상 부띠끄를 차린다. 이후 화가의 아내와 직업여성으로 활동하면서도 틈틈이 드로잉을 연마, 자신이 화가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81년부터 86년 사이에는 휴가철을 이용하여 미국을 비롯, 이집트, 멕시코 등지에 대대 적인 여행을 한다. 여행 당시와 그 이전에 그린 세필화 드로잉들이 원화랑 정기용씨의 관심을 끌어 87년 서울 원화랑에서 두번째 개인전의 기회를 갖게 된다.  이 당시 이미 진솔한 내용과 담백한 양식으로 김명희 특유의 화풍을 구축, 화가로서의 기량을 인정받 는다. 미국 중남부 뉴멕시코 여행을 하면서 아메리칸 인디언 원주민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그들을 그리면서 깊은 애정과 함께 동질감을 느낀다. 90년 소수민족이 겪는 자아정체성에 대한 갈등과 함께 뉴욕을 떠나기로 결심, 15년 만에 귀국한다. 귀국 후 서울에서 '80년대 미국 물질문명의 병폐를 복습하기보다는 강원도 산골에 칩거하기를 선택하였고, 내평리에 폐교에 거주지 겸 작업실을 마련한다. 비로소 김명희는 남편과 마찬가지로 전업작가로서의 생활이 가능해졌다.  스스로를 '무너진 농경문화의 최전선인 내평리 현장의 목격자와 체험자'로 자처하면서, '자연과 사라진 아이들의 영혼과의 만남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 한다.  93년 겨울에는 문화적 재충전을 위해 소호의 로프트에서 보내고, 다시 내평리의 작업실에서 작업에 정진, 1995년 원화랑에서 8년 만에 세 번째 개인전을 갖게 되었다.

현실과 상상,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김명희의 작품세계는 기본적으로 알레고리와 상징의 세계이다. 정밀묘사 수법의 극사실 주의를 구사하면서도 항상 상상의 세계에 한발을 내딪고 있다.  현시과 상상의 이중성, 현재와 과거의 통시성을 근간으로 하는 그녀의 알레고리의 세계는 87년 전시에서 알레 고리 자체가 주제인 세필 드로잉의 인물화를, 95년 전시에서는 상실을 주제로 한 새로운 양식의 칠판화를 선보였다.

그녀의 문학성과 알레고리가 풍부한 새로운 양식의 인물화 연작은 일종의 여성주의 발언 이기도 했는데, 여인들의 초상에 여성의식과 역사의식을 불어넣음으로써 그것을 알레고 리 인물화로 승화시킨 것이다. 김명희의 알레고리 인물화는 대가들이 재현한 역사적인 또는 신화적인 여성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한 이미지를 현실의 여성과 대치 시키는 복합 이미지 수법을 사용하는데 예컨데 [사빈느의 여인](가나화랑)에서는 푸생의 그림에 묘사된 강탈당하는 여인과 뉴욕의 건장한 백인여성을, [뛰는 여인] (뉴욕 전시) 에서는 베르니니가 묘사한 아폴로와 나무로 변신한 다프네의 모습을 여자 마라톤 선수와 병치시킨다. [끝없는 생각]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를 재현한 그림이 걸려있는 부엌에 서 생각에 잠겨 마늘을 찧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다.  집안 일을 하면서도 머리는 딴 데 가있는 여성화가의 자기모순과 이중성을 표출하고 있다.

알레고리 자체를 주제화하였던 알레고리 인물화 연작 뿐 아니라 김명희의 풍경화 역시 알레고리라 부를 수 있다.  멕시코 여행에서 그린 사생화 뿐 아니라 95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내평리 숲의 야생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가 그리는 풍경은 숭고하고 경외스러운 대자연의 경관이 아니라, 신비하고 오묘한 자연의 한 부분이다. 끈질긴 생명 력을 보여주는 풀 한포기, 구름 낀 한조각의 하늘, 파도에 씻기는 한구석의 암반 등 그는 여성의 눈으로 선택한 한 부분의 하찮은 자연을 재해석하므로써 알레고리적 풍경 화를 만드는 것이다.

상실의 메타포로써 칠판화

김명희의95년 개인전은 무엇보다 칠판화로 화재를 모았다. 폐교가 된 국민학교의 붙박이 칠판에 오일파스텔로 소묘를 시작한 것이 새로운 양식의 그림을 창안하게 된 것이다.  항상 주변의 정황에 민감하고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그는 '레디메이드' 화판에 무심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칠판은 그녀에게 단순한 화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버려진 칠판은 상실과 향수의 메타포로써 김명희는 소외된 역사의 한 국면에 자신의 추억을 병치시킴 으로써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하는 것이다. [내가 결석한 소풍날]은 상상 이라는 칠판화의 의미를 요약하는 가장 상징적 작품이다.  [우체부] 역시 상실과 회복의 교량역할을 하는 상상적 메신저이다. 김명희 인물의 이러한 상징성은 고도의 회화적 전 략으로 그 효과를 배가한다. 추상적으로 생략된 배경에 단지 형상만이 도드라지며, 그 형상은 정밀묘사적 수법으로 실제보다도 더 리얼한 회화적 리얼함을 창출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대상의 상징성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95년 전시에는 칠판화와 같은 신작 뿐 아니라, 과거로부터의 소묘화, 즉 종이 위에 연필, 목탄, 파스텔로 그린흑백 또는 채색드로잉도 선보였다. 그 가운데 '12지신' 연작이 이색적 이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에 한다리를 치켜들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용맹스러 운 [닭], 김명희 자신의 실루엣 옆으로 을씨년스럽게 실내에 웅크리고 있는 [뱀], 무엇엔 가 열중하고 있는 김차섭을 문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두 마리의[개], 바다와 구름을 배경 으로 우뚝 선 초현실적 항아리와 그 위에 청화로 그려진 [용] 등 상징적 동물들을 일상 의 셋팅 속에 배치시킴으로써 상징성과 현실성의 양극을 왕래한다. 그밖에 [숲 속의 야 생화], [서울서 온 아이들]과 같은 풍경화, 인물화들 역시 어느 풍경화나 인물화와는 다른 일종의 알레고리를 만든다.

소속감과 동질감의 치유적 페미니즘

김명희의 작품으로부터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작품세계에 내재하고 있는 여성적 감수성과 여성주의 의식이다. 김명희는 여성특유의 시선으로 주위를 관찰하고, 여성적 필치로 그것을 담아나간다. 특히 87년 전시에서는 여성주의가 거의 주제로 부각되었는 데, 김명희는 그러한 여성주의 내용을 전달할 특유의 여성적 양식을 개발한 것이다.

김명희가 개발한 여성적 양식의 특징은 우선 세필과 정밀묘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녀의 선묘는 여성적 손맛의 극치를 보여줄 뿐 아니라 섬세함의 파워로 남성적 활력을 압도 한다. 극사실주의 수법의 정밀묘사 역시 여성성을 극화, 강화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그녀가 포착하는 모티브 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녀는 결코 거창한 대상을 그리지 않는 다. 길섶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들꽃이나 잡초, 동네 아주머니와 아이들, 우체부 등 일상 적인 주변 풍물이나 인물을 그릴 뿐이다.  역사적 진실이나 우주원리를 캐내는 김차섭의 '대서사'적 주제에 비하면, 소외와 익명을 다루는 김명희의 그림은 대조적으로 '소서사' 적 이다. 그는 남편과는, 아니 남성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것이 '타자'의 시선인가. 김명희는 분명 여성적 감성으로 느끼고 여성적 음성으로 말한다. 칠판화 [희철이 어머니]는 농경문화에서 산업문화로의 전이에도 불구하고 농사일에 종사 하는 변치 않는 여성의 역할을 가시화하고 있다. 그녀가 반문하듯이, 만약 인류의 역사를 여성적 노동의 시간으로 환산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 것 인가.

김명희는 작업에서뿐 아니라 실제 생활 면에서도 여성주의를 실천한다. 그러나 그것은 희생자의 페미니즘도, 활동주의 페미니즘도 아니다. 여성적 보살핌을 미덕으로 삼는 일종 의 '가정적 페미니즘' 이라 할 수 있다. 김명희는 뉴욕시기에 남편의 화업을 위해 생활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비판적 희생이 아니라, 경제적 자립 없이는 정신적 자립도 없다는 신념과 함께 자신이 현실적인 면에 좀더 유능하다는 판단에서 내린 자의 적 선택이었다. "역사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한 김차섭의 그림세계를 아들이라고 한다면 심리적인 세계를 표현하는 저 김명희의 그림세계는 딸이라 할 수 있죠. 뉴욕에서는 아들 을 위해 집중했기 때문에 딸은 자생적으로 살아남은 거예요" 라는 이 한마디에서 인간 김명희의 인생관과 여성화가 김명희의 예술관을 읽을 수 있다. 그녀는 이질감과 소외 감을 초래하는 분리주의 페미니즘 보다는 소속감과 동질감을 형성하는 치유적 차원의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것이다.

상상적 리얼리즘과 데자뷰적 비젼

언뜻 보면 아무 양식도, 기교도 없이 그려진 무미건조한 형사화 지나지 않는 김명희의 그림이 왜 그토록 보는 이를 사로잡는 것일까.  화장기 없는 여인의 소박한 얼굴의 사실 화가 왜 그리 매혹적인가. 김명희는 무양식의 양식, 무기교의 기교로 새로운 사실주의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김명희의 작업을 구태여 구분하자면 사실주의 범주에 속한다.  스스로 '현장의 목격자와 체험자'로 자처하면서 현실의 문제를 취급하고 리얼한 형상언 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주의하면 떠올리게 되는 민중계열의 '사회주 의 리얼리즘'도 아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기에는 이념보다는 은유가 앞서며, 자연주의 리얼리즘이기에는 관찰보다 상상의 역할이 크다. 김명희는 객관적 사실 또는 사회적 진 실에 시적인 감흥, 내적 경험, 잠재적 상상력을 오버랩시킴으로써 일종의 '주관적 사실주 의'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세계를 감도는 향수, 상징, 알레고리, 설화와 같은 문학적 취향이나 초현실적 표현주의가 바로 그것을 말한다. 주관적이고 상상이 가미된 새로운 리얼리즘, 그것은 길베르 뒤랑의 원형론을 빌어 정의한다면, 제우시스적 진실주의 거울과 파그말리온적 상상의 거울이 합치된 '상상적 리얼리즘'이다.

상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역설 또는 이중성이 김명희 리얼리즘에 특성을 부여하는 핵심개 념이다. 사진전사 수법의 극사실주의 화풍에도 불구하고 사실주의의 현장성을 초월하는 초사실적 실재가 편재한다는 것이다.  '12지신' 연작의 상상적 재현은 물론 [내가 결석한 소풍날] 을 비롯한 '상실과 향수' 칠판화 연작 모두 상상적 리얼리즘의 산물이다.  [희철이 어머니], [공놀이]와 같은 인물화나 [조팝나무], [나리]와같은 사생화도 마찬가지 이다.  인물이나 대상을 현실적 맥락으로부터 고립시켜 기념비적 초상을 만드는 순간 그 사람들은 현실을 떠나 상상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명희의 상상은 항상 현실과 현재에 깊게 뿌리박고 있으며, 과거의 상실을 극복하는 미래적 시각에 입각해 있다.  그러한 까닭에 그녀의 그림은 밝고 건강하며 누구나 공감하는 강한 호소력을 지니는 것 이다. 김명희 그림의 호소력과 매혹, 그것은 그녀의 상상적 리얼리즘이 결국은 인간의 원형 또는 잠재의식을 일깨우는 '데자뷰'적 비전의 재현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현실과 상 상의 이중성 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통시성에 거주하는 김명희의 데 자뷰적 비전은 롤랑 발트를 매혹시킨 사진의 이중비전을 유추시킨다. 순간을 영속화할 뿐 아니라 피사체와 그것의 사진적 반영이 동일하면서도 결코 동일할 수 없는 사진 이미 지의 운명적 이중성, 이러한 이중비전이 김명희의 상상적 리얼리즘이 갖는 본질이며 그 인식론적 충격의 원천이 아닐까?  

김홍희 / <가나아트 1995년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