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장재선의 문학노트     -    청산, Paul Lee , 2006 

그림은 흰 도화지 위에만 그리는 줄 알았던 초등학교 시절이 있었습니다.나뭇잎을 칠할 때는 초록빛, 하늘은 파랑색을 칠했던 것처럼 말입니다.이때 선생님을 통하여 전해 듣는 말에는 '꼭'이라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그러나 예술세계에서는 이런 고착된 틀을 깨어야 진정한 자신의 혼이 담긴작품이 탄생하는 것 같습니다.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렸던 서양화가 김명희의 '칠판화'를 보면서 떠오른생각입니다.그림은 일체의 선입관 없이 그 자체로만 감상하는 것이기에, 우선 보여지는 대로만보고 느끼자, 라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어떻게 캔버스를 대신해서 칠판에 그림을 그렸을까? 라며 사뭇 진지한 표정과눈빛이 되어 그림 앞으로 이동을 합니다.그 앞에 서니 교실을 채웠던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그림 속에서 막 뛰어 나올 것 같은생동감이 넘칩니다. 이런 생생한 이미지를 살려내기 위해 작가는, 칠판이 물감을먹어버릴 것을 우려해 유화대신 오일 파스텔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교실의 칠판에 낙서를 하던 기억이 있는 우리들입니다.분필가루가 뿌옇게 날리던 칠판 앞에서 악동들이 서투른 글씨를 남긴흔적이 있습니다. 화가는 그런 추억을 되살려내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칠판을캔버스로 사용합니다. 강원도의 궁벽한 시골 폐교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한 때그 곳에서 공부한 아이들을 보면서 강한 사로잡힘에 끌리게 됩니다.중심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그 중심을 다시 찾아보려는 화가의 노력이 그림의곳곳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 자신을 그려달라고 한속삭임의 느낌을 그대로 옮겨 놓았는지도 모릅니다.

이미 떠나간 아이들의 그림자와 텅 빈 교실, 여럿 그림 중에서 나는,'내가 결석한 소풍날'의 그림에 진한 향수를 느낍니다.갈 수 없었던 소풍날의 정경을 읽어낸 작가는 항상 주변의 정황에 민감하고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듯 합니다.작품 안에는 소풍을 못간 소년들이 칠판 앞에서 팽이를 지치고 있으며,그들뒤에 있는 비디오 화면은 인생의 면전에서 그렇게도 빨리 지나가 버린,근심 없던 시절에 대한 그리운 내레이션을 보여 줍니다.

추억을 환기시킴으로서 떠나온 시간에 대한 뒤돌아봄이 자신이 누구였나를깨닫게 되는 것이지요.나의 어린 시절도 학교와 집을 오가던 것이 전부였던 관계로 마을을 벗어난 적이없었습니다. 오로지 일년에 두 번인 소풍날이 유일한 나들이었지요.비가내릴 것 같은 조바심으로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 소풍전날 밤의 설레임,행선지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던 절간에서 먹었던 간식과 김밥은 그 날에만먹을 수 있었던 최고의 음식이었으니까요.

땡그랑 땡그랑, 옛날의 종소리가 청아하게 들립니다.잊혀졌다가 돌아 온 그 소리의 맑음이 나로부터 떨어져 나갔던 동심의자리를 다시 더듬게 합니다.수돗물을 마셔서 얼굴이 희다고 말한 도회에서 전학을 온 소녀,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나와 친구를 어둑해진 운동장에 벌을 세운 선생님의 환영도 어른거립니다.

화가 김명희에게 칠판은 단순한 화판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버려진 칠판을 향수의 메타포로서, 소외된 아이들에게 자신의 추억을 병치시킴으로서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합니다.그리고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교실 풍경을 강한 생존의 끈을 붙잡듯이 연결해 가고있습니다. 누구나 공감하는 과거의 뿌리를 현재의 시간위에 드러냄으로서 상상력과호소력이 담겨진 그녀의 그림을 보면서, 유년의 내 집에 돌아온 듯한 여유를누렸습니다.또한 투박한 소리와 흙냄새가 피어나는 것 같은 화폭에서 고향의 정서를 즐겼습니다.이제 그 시절처럼 도화지위에는 그림을 그릴 수 없지만 몇 줄의 언어로 동심의세계를 이렇게 대신 읊어 봅니다.

″동심이란, 색깔로 표현해 보자면 하늘의 코발트색 같기도 하고, 반응으로표현하자면 마치 리트머스 시험지같이 정확하면서 거짓이 없는 것 같고,물건으로 표현해 보면 따스한 봄날 둔덕에 피어나는 미나리의 새순과도 같이보드라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