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섭·김명희 부부가.... 오 광 수(미술평론가)    

김차섭·김명희 부부가 산골 벽촌인 강원도 춘천 내평리에 은거한지도 벌써 5년째에 접어든다. 뉴욕 맨하탄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던 이들 부부가 서울이나 그 근교가 아닌 외진 벽촌을 택하게 되었을 때부터 주변의 사람들은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태도를 보였다. 상황의 연출치고는 너무 극적이었기 때문에 과연 연출자가 이를 지탱할 수 있을지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벌써 옛말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들 나름의 터를 잡아가고 있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독특한 정신세계의 축에 그들의 상황이 적절히 조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실 네 개 짜리 분교를 가정집과 화실로 꾸미고는 공동의 공간 외에 각각 한 교실씩 개인화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 부부의 작품은 서로 닮지 않았으면서도 정신의 항상성에선 서로 밀착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얼핏 김명희의 작품은 치열한 현실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상에로 접근해 가는 밀도가 느껴질 정도로 안으로 파고드는 내면성을 드러내 놓는다. 연필이나 목탄으로 하는 정밀묘사는 대상에 대한 냉정함, 이른바 객관적인 시각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가 지중해 여행, 멕시코 여행에서 얻은 인상들을 묘출한 일련의 작품에서도 이 같은 짙은 상황성에 대한 파악이 두드러진 편이었다. 그의 이 같은 상황에 대한 강한 의식의 틀이 내평리의 한 초등학교 분교라는 상황에서도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예술가는 현장의 목격자, 체험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모름지기 자신의 예술적 상황과 태도를 반영해 준 것일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떠나간 교실에서 서서 그들이 내뿜던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예술가로서의 자신은 누구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자문해 보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바로 이 자문에서 비롯된다. 버리고 간 태극기, 칠판, 각종 표어와 포스타 등을 하나하나 다시 수거하면서, 그 버려진 것에 대한 기억을 소급시킨다. 순하디 순한, 산골 아이들의 수줍은 듯 하면서도 금방이라도 풀 냄새가 묻어 나올 것 같은 풋풋한 표정을 재현시키고, 산나물을 한 소쿠리 캐오는 시골아주머니의 약간 멋쩍은 듯한 포즈를 재빨리 포착해 낸다. 길가 풀섶에 피어있는 들꽃을 한아름 옳겨 놓기도 한다. 그러므로서 벌써 떠나 가버린 아이들과 그들의 숨길이 베여있는 교실과 또 주변의 인물들과 자연을 다시 한자리에 모으고, 그들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기억을 소중하게 담아냄으로서 화해의 장을 연출해 보인다. 아이들은 떠나가고 학교는 비었지만, 그들이 뛰놀던 운동장과 운동장 주변의 들녘과 산골을 이제 잡초만 자라나고 있지만, 작가는 결코 그들이 떠난 것이 아니고 그들이 어느 곳에 가 있던 그들의 혼은 여기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나하나 화폭에 새겨 나가는 것이다. 김명희가 주로 다루어 왔던 매재는 캔버스와 유채안료가 아니라 종이에 연필이나 목탄이었으며 때로는 수채나 크레파스 같은 재료들을 다루어 왔다. 그러한 매재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는 최근의 작품에까지 고스란히 지속되고 있다. 말하자면 전통적인 재료개념에 구애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최근의 작품가운데 일련의 대형화폭이랄 수 있는 칠판 위의 작품도 그의 이 같은 재료에 대한 자유로운 태도의 좋은 반영이라고 하겠다.칠판은 교과의 내용을 기술하는 바탕이다. 분필로 쓰고는 시간이 끝나면 지운다. 칠판은 언제나 비어있는 판이고 무언가 쓰여질 것을 기다리는 판이다. 김명희의 대형화폭으로 변형된 칠판은 쓰여지는 판이기 보다 그려지는 판이다. 그가 주로 칠판을 화폭으로 하고 그린 내용은 이 학교에 다니던 어린 소년과 소녀들이고, 이 산골학교 주변에 있던 주민들의 모습이다. 한말로, 칠판에 등장하는 내용물은 장소의 상황성을 강하게 반영해주는 모티브들이다. 옹기종기 모여선 아이들은 기념촬영이라도 하듯이 이쪽을 향하고 건강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때로 손에는 한아름 들꽃이 쥐어 있기도 한다. 아마도 그들은 분교가 폐쇄될 때 저렇게 한자리에 모여 기념촬영이라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명희의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무심히 걷잡혀 지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그려지는 대상이나 바라보는 인물이 어느 특정한 시간과 공간성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기념비성을 띄고 있다. 바라보는 사람의 임의적인 선택에 의해 포착되어지는 단순한 대상물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대상물이 깊은 상관관계를 지님으로서 더욱 상황성에 밀도를 더해주고 있다. 상황 속에 뛰어든 작가의 강한 참여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도 이 점에 있다. 현실과 이미지의 갭을 극복하고 바로 현실이자 이미지이고자 하는 표현수법도 이 같은 강한 상황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칠판은 그대로 화폭으로 대신하고 그 위에 아이들이 사용하는 크레용과 유사한 오일파스텔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같은 문맥에서 파악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칠판이라는 거울에 반영된 아이들의, 또는 벽촌의 삶의 기록이다. 이미지이면서 부단히 현실로 되돌아간 세계로서의 기록이다. 작가는 그만큼 화면 깊숙이 들어가 있다. 상황의 충실한 증인이요 기록자이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그림은 한 작은 공간과 시간의 기록을 담은 역사화로서의 의미를 마침내 획득하게 된다.작가는 <내 그림은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닌 현실의 문제, 특히 Dislocation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이다>고 자문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씨앗을 제자리에 심고 태양과 비를 기다리며 가꾸는 것은 내 몫이다.> 따라서, 그가 화면에 옮겨놓은 아이들의 또는 시골사람들의 모습은 잃어버린 옛날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지금도 어딘가에 서식되고 있는 우리들의 풋풋한 정감의 삶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다. 그러한 인식을 꽃피게 하는 것, 그것이 김명희의 참다운 제작의 의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