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낳아 기르다
나무를 그릴 때 화가는 그것이 자라나도록 해야한다.
- 17세기, 석도
무엇보다, 지난 10여 년 간 김명희의 그림이 계속 자랄 수 있도록 뿌리내리고 있는 그 토양은 칠판이라 할 수 있다. 김명희의 작업에서 칠판은 그저 우연이나 순간적인 재치에 의해서 발견된 회화 미디어, 곧 단순한 캔버스의 대체물이 아니다. 그의 칠판화 - 편의상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 는 그림을 그릴 때 지지해주는 이젤의 역할과 그림을 감상할 때 지탱해 주는 프레임의 기능을 내적으로 통합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간적으로나 - 작품제작의 측면에서 -, 공간적으로 - 작품감상의 측면에서 -, 이젤과 프레임 사이에 존재하는 캔버스 표면에만 머무르게 했던 모더니즘 회화의 협소한 인식적 지평을 확장시키고 있다. 제도로 인해 생겨난 임의적인 경계를 해소함으로써 칠판화는 이를테면 그림의 앞, 뒤, 심지어 옆까지도 보게 만든다. 그의 그림 [퍼즐]에서 어린 여학생이 단어를 늘어놓고 하나의 문장 '통합체'를 만들어내는 장면은 정확하게 이 의제를 건드린다. 그러므로 여기서 칠판은 작가적 태도 및 사고, 작업방식에 조응하는 하나의 지표이며, 관객의 입장에서는 회화적 공간과 조우하여 상상의 시간을 확장하게 해주는 일종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칠판 기호의 이러 한 다의성은 일차적으로 그것이 놓여져 있는 컨텍스트로부터 시작된다.
김명희가 선택한 칠판은 정상적으로 안착해있는, 다시 말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실 벽에 걸려 온종일 분필가루를 만들어내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알려져 있듯이 17년에 걸친 뉴욕생활을 마치고 정착한 강원도 내평리의 폐교에 버려져 있던 칠판이 그의 칠판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텅 빈 교실은 공포영화의 단골 로케이션이거나 기껏해야 동창모임의 노스탤지어를 건드리는 장소일 뿐이다. 그런 죽은 공간이 작가의 작업실로 '기능전환' 되면서 새로운 생의 에너지를 발산했듯이, 낙서자국만 남아있던 칠판은 작가의 부지런한 손놀림에 의해 새로운 그림의 텃밭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한갓 도시인의 감상주의나 예술가적 낭만주의가 아니다. 귀거래사와 안빈낙도, 또는 무위자연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기능을 상실한 이 과거의 칠판은 칠판 위에 그려진 이미지가 현재로 부활하기 위한 하나의 맥락을 제시하지만, 거기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간다. 칠판의 분필자국 위에 작가의 오일스틱 스트록이 중첩되면서, 역설적이게도, 점점 더 이 칠판화는 칠판이 원래 있었던 그 자리의 그 역할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게 된다. 작가가 탄생시킨 이미지들이 실리게 된 칠판은 그것이 작업실에 있던 화랑에 걸리던 아니면 또다른 어떤 장소에 걸리던 간에 원래의 문맥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자신의 '어긋난 상태 dislocated'를 지시한다. 그리하여 실제의 정착located이 아니라 상상 속의 안착 혹은 다른 말로 하면 정착의 계속적인 지연상황delay을 보여줄 뿐이다. 또한 이 칠판의 기의는 정확하게 그 위에 투사된 이미지의 운명과 일치한다. 라캉을 믿는다면, 거울이미지 단계에 인식한 완벽한 자아상은 그것이 실제 자신의 부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초의 강력한 외상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그 외상은 언제나 유예될 수밖에 없는 욕망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실시간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김명희의 작품 [꿈]에서 과거의 자신과 만나는 한 소년의 '우화'가 상기시키는 바와 같다. 자신의 아기 적 모습을 그린 그림을 이제는 훌쩍 커버린 소년이 쓰다듬고 있는 장면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나선형 시간체험이 가져다주는 신비함 뿐 아니라 단선형 시간의 그 준엄함이다. 어느 대학건물 벽면에 붙박이 되어있는 [마지막 학기1]나 다른 작품 [내가 결석한 소풍날]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과거의 어느 순간이 그림을 통해 복원됨으로써 상실했던 체험을 공유할 수 있게 되지만, 단지 가상적 회복이라는 그 효과 때문에 그림의 의미가 풍부해지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복원의 가상성을 수긍하되 현재의 삶으로 이를 재통합하는 새로운 각성의 계기를 거치면서 그 그림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또 다른 그림의 제목, [풍요로운 부재]가 뜻하는 바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다시 말해 김명희의 칠판화는 관객과 작품과 작가를 관통하는 인식의 빛이 어느 한 순간의 포즈pause로 착상된 것이기도 하지만, 실은 더욱 멀리 더욱 오랫동안 유랑함으로써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의무를 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말놀이를 하자면 유전流轉은 그의 유전遺傳라고나 할까. 하여튼 칠판은 이처럼 김명희 그림의 컨텍스트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텍스트이기도 하다.
이미지를 한결 도드라지게 하는 배경이 되는 짙은 초록색 칠판은, 특히나 인공조명이 장악하고 있는 화랑으로 들어올 때 하나의 오브제가 된다. 환유적 오브제로서 이 칠판화의 일차적인 기호작용은 말할 것도 없이 가르친다는 행위와 연관된다. 배우기라는 대응 행위를 상정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칠판은 선생의 영역이다. 그런 칠판을 통해 김명희는 너무 일찍 포기된 회화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환기시킨다. 표면주의에 의해 일치감치 차단된 환영주의의 공과功過에 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때, 김명희는 위대한 교사의 상냥함으로 우리를 무장해제 시킨다. 이때 그가 동원하는 다양한 크기 및 종류의 칠판들과 그 위에 살아있는 의연한 사람들, 그리고 차분한 사물들은 교사로서 그가 궁리해낸 '교안'에 해당한다. 가령 가로로 길게 펼쳐진 공교육용 칠판은 내러티브 회화의 시간성에 대한 새로운 발상과 접근을 가능하게 해준다([강요된 유전]). 다른 한편, 조그마한 사교육용 칠판들은 기술복제시대에 쪼그라든 회화 이미지의 힘을 다시 자각하게 해준다([공놀이1, 2]). 그의 칠판에서 텍스트와 이미지가 만나고, 서구의 신화와 아시아의 상징이 교우하며, 회화사의 거장과 장르의 역사가 부딪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인문학적 교양을 갖춘 이 겸손한 계몽주의자에게는 분단이나 이농, 이주, 망명 등의 동시대적인 사회적 이슈를 언급하는 것도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땅과 기후에 우리 몸이 적응하는 것처럼 무릇 '목격자와 체험자'라는 기본적인 작가적 소양을 갖춘 자라면 이런 사회적 '풍토성'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김명희의 그림에서 감지되는 풍요로움은 겹의 형태를 하고 있다. 준수한 아이들, 소박한 이웃들, 윤기 나는 채소들, 푸릇한 꽃들의 꽉 찬 생명력에서 느껴지는 감각적 풍요로움은 무엇보다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생각의 힘 덕분에 배가된다. 우리 회화사에서 매우 보기 드문, 인식과 감각의 중층적 풍요로움이라는 이 덕목은 [김치 담그는 날]이라는 그의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모티브나 구성방식으로 보아 1987년 제작한 [끝없는 생각]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음식을 만들고 있는 작가자신의 모습과 그가 빠져있는 생각의 세계를 이중으로 '인화'하고 있다. 손으로는 생기가 도는 야채를 다듬고 있지만, 머리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버드나무처럼 세차게 돌아가고 있다. 이 때 베르메르의 자연광보다는 라 투르의 촛불에 가까운 내광이, 사념에 젖어있는 이 작가의 얼굴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여기서 [김치를 만들며]의 모니터나 [끝없는 생각]의 창문은 일종의 '그림 속의 그림'으로 그림 그리기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제시한다. 특히 [김치 담그는 날]의 모니터는 환유로 전유된 칠판 위에 하나의 강력한 은유로서 투사된다. 로만 야콥슨의 말대로 하자면 이렇듯 언어의 은유적인 축이 환유적인 차원 속에 투사되는 것이 바로 시적인 기능이다. 뒤로 물러나 보면 가사일과 미술작업을 같이 진행하는 여성작가에게는 이러한 겹의 알레고리적 상황 자체가 하나의 리얼리티로 다가온다.
김명희의 작업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독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바로 앞에서 말한 대로 여성작가의 현실적인 조건을 재현하는 차원에서 접근할 수도 있고, 다르게는 그의 작품에 나타난 여성적 소재나 필치를 가려보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 <오륜행실도>의 열녀편이 쓰여져 있는 그림의 배경은 앞의 해석을 강화할 수 있을 테고, 여성, 어린아이, 노인 등 자주 등장하는 인물의 전형성이나 그것을 구현하는 세밀한 필치 등은 뒤의 방식을 보충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던 김명희는 어머니의 딸이라기보다는 아버지의 딸로 보인다. (그의 작업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우리가 신화의 언어를 전용하도록 이끈다). 지식과 지혜에 대한 사랑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언어에 대한 애착은,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의 도움을 받아 추측컨대, 김명희의 원형을 제우스의 머리를 가르고 탄생한 아테나로 보게끔 한다. 남성적 직업으로는 농업과 항해술, 여성적인 일로는 제사, 방직과 재봉에 능한 아테나답게 김명희의 작업에는 [봉분축조 문화인 이동로 메타여정], [한강둔치 12지신 봉분 프로젝트] 등 시적역사를 구성하는 작업이 존재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주도면밀하게 '직조'된 이야기 그림들이 끝없이 풀려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그가 탄생시킨 칠판 위의 형상들은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낳은 것에 가깝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안에 동그마니 앉아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그 형태의 사실적인 묘사와는 대조적으로 배경의 어둡고 깊은 물과 과장된 원근법, 그리고 희미한 수평선으로 인해 비현실감을 증폭시킨다. 이 때 칠판은 신화적으로 말하면 어머니 바다Mother Sea 곧 '모체의 깊이 또는 자궁의 심연'으로 치환된다. 나무로 만든 딱딱한 칠판은 그 깊은 어두움과 마주한 상상의 시선을 통과하면서 탄생과 부활의 보편적인 엠블럼이라 할 수 있는 리퀴드-물로 변신한다. 그리곤 갑자기 그 물 속으로부터 빛과 색채로 구성된 이미지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김명희의 그림에서 인물의 배면 혹은 측면에서 강하게 비추고 있는 하이라이트나 유독 불분명하게 처? ?풔? 인물의 하단부분 등은 이런 어머니 바다의 출산이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 파도가 갓난아기를 해변가로 데려다주었다는 무수한 영웅탄생의 설화는 김명희의 그림에서 수많은 물결로 직조된 듯한 뽀송뽀송한 어린아이들의 얼굴을 통해서 재연되고 있다. 만약 마술적 사실주의가 물질세계를 넘어선 것의 상징을 겨냥하고 있다면 분명 김명희의 그림은 거기에 속한다.
결국 빛과 어두움의 강한 대비를 통해 탄생된 사실적인 이미지들은 과거와 현재의 순환, 기억과 환상의 교차편집, 역사와 신화의 하이브리드 등의 과정을 거쳐 강력한 상징적 도상들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하여 여느 우편배달부의 외관을 한 [우체부]는 미래의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로, 평범한 아낙의 초상인 [희철이 어머니]는 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구현한 상상으로, 또 [복숭아를 든 작은 뮤즈]는 옛 그림에서 보던 동자상의 현실태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온 [북서에서 온 아이]와 [남동에서 온 아이]는 동시에 다른 곳에 존재하는 분신의 모습들로 각기 서있다. 그런데 이 도상들은 장식성이 배제된 다른 기념비적 도상들과는 달리 유독 두께나 마티에르를 갖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인??. 그로 인해 종종 그의 그림은 일견 사생寫生의 차원에 속하는 사진과 같은 그림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서양의 장르적 전통에서 정물화가 '허영Vanitas'에 관한 미래적 교훈을 선점하고 있다면, 김명희의 [추수]는 갓 거둬들인 신선한 야채들에서 빛나는 현세적 애니미즘을 부각시키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진의 시제가 항상 과거의 존재를 건드리는 '죽음의 기억Memento Mori'에 속박되어 있다면 차라리 김명희의 그림은 영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분명 그의 칠판화는 미메시스mimesis보다는 디에제시스diegesis의 시간을 타고 넘나든다. 빛과 어둠의 변주를 통해 인물과 사물들을 배경 속에 살아있게 만드는 영화적 시간은 그의 기운생동한 그림에 정확하게 조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근 작업에서 그가 종종 동원하는 비디오 동영상은 논리적인 결론이긴 하지만 다소간 동어반복적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김명희가 낳은 그림은 이러한 영화적 프라나*에 의해서 살아 숨쉬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인식과 감각 그리고 상상의 토양 위에서 매 순간 자라나고 있다. 이것이 김명희 그림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설화, 그림 이야기의 잠정적 결말이다.
백지숙(미술평론, 전시기획)
* 프라나Prana는 육체라는 그릇을 채워 부풀게 하는 호흡을 가리키는 말로, 이 프라나로 인해 인도의 조각이나 그림에서는 대상의 표면이 마치 부풀린 것 같이 매끄럽게 처리된다고 한다. (벤자민 로울랜드 <동서미술론>)
Beck Jee-sook, chief curator, K_MAC Marronnier Art Center of the Korean Culture and Arts Foundation 1-130 Dongsung -dong, Jongno-gu, Seoul, Korea. www.kcaf.or.kr Insa Art Space of the KCAF 100 -5 Gwanhoon-dong, Jongno-gu, Seoul, Korea (New space open in 2003 August) www.insaartspace.or.kr tel : 82-2-760-4720 fax : 82-2-760-4725 email : ondoo@kcaf.or.kr/ondoos@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