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사라짐'에 대한 예술적통찰/김명희씨 귀국5년만에 개인전
*산나물 캐오는 아주머니/매미채 들고 나선 어린애들/칩거중인 강원산골 체험담아 강원도의 산골 오지에 5년째 칩거하며 자연의 생명력,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화면에 담아온 화가 김명희씨(46)가 그동안의 작업 성과들을 모아 전시회를 갖는다. 12일부터 25일까지 원화랑(514-3439)에서 열리는 김씨의 작품전은 뉴욕에서 17년이나 생활을 한 작가가 귀국후 다시 탈서울을 감행, 어떤 희귀한 예술적 궤적을 그려가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저로선 8년만의 개인전인데다가 고국에 돌아와 제작한 작품들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라 감회가 깊습니다. 한때 폐허가 된 것 같았던 산골 마을에서 제가 겪었던 인간적 예술적 체험들을 작품으로 남겨 그 마을을 위한 비망록으로 삼고 싶습니다.”
산나물을 한 소쿠리 캐오는 아주머니, 길가에 피어있는 야생란, 매미채를 들고 길에 나선 어린애들, 꽈리 가지 오이 토마토가 가득 담긴 대나무 광주리. 김씨의 화면에 담긴 장면들은 그의 생활 주변 그 자체이다. 미국 시절부터 워낙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묘사력으로 정평이 있던 김씨지만 그의 손맛은 이번 출품작들에서 정점에 달해, 인물이든 사물이든 금방이라도 화면 바깥으로 튀어나올 듯한 생명력을 얻은 느낌이다. 그러나 단순히 서울에선 보지 못하는 낯선 풍물에 대한 동경이나 흘러간 과거에 대한 향수로만 끝나지는 않는다는 데서 그의 작품은 시작된다. 그것은 지금도 우리시대 어디쯤에서 수없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를 상실, 또는 사라짐 에 대한 예술적 통찰의 결과물들이다. 서울에서, 80년대 미국 물질문명의 병폐를 복습하기보다는, 강원도 내평리 폐교된 분교로 자리를 옮김. 자연과 사라진 아이들의 영혼과의 만남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함. 김씨 자신이 작성한 연보의 1990년 항목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그해 김씨가 같은 화가인 남편 김차섭씨와 함께 문화의 첨단인 뉴욕으로부터 강원도 춘성군 내평리의 오지에 갈 때만해도 그곳은 버려진 땅이었다. 소양강 댐 건설로 일대가 수몰되면서 교실 네개 뿐인 분교는 폐교가 됐고 김씨 부부는 이곳을 사 가정 겸 화실 삼아 생활을 시작했다. 마을 전체가 통틀어 일곱 가구, 이따금 찾아오는 우편배달부의 오토바이가 없으면 외지와의 교신이 단절된 오지였다. “문 닫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버리고 간 태극기,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 열심히 살자 간첩신고 같은 구호들을 보며 예술가는 이 현장의 목격자이자 체험자가 돼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출품작 31점 중 상당수는 김씨가 사는 폐교의 벽에 걸렸던 칠판을 캔버스 삼아 그 위에 직접 그린 작품들이다. 수십 년간 백묵을 썼다 지우곤 해 색이 바랜 녹색 칠판 위에 그려진 해맑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표정은, 지금은 그 아이들이 뛰놀 학교마저 사라졌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김씨는 “수십년 아이들을 봐온 목격자인 칠판에는 언제쯤인가 그 앞에서 공부하다 갔을 아이들의 영혼이 묻어있고, 그 애들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 그림은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닌 현실의 문제, 특히 21세기에 대대적으로 펼쳐질 탈향과 뿌리뽑힘(Dislocation)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씨앗을 제자리에 심고 태양과 비를 기다리며 가꾸는 것이 제 몫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뒤로 질끈 동여맨 생머리. 그 자신 이미 내평리 사람이 다 돼버린 이 화가는 97년 몽골 여행을 갈 꿈을 세워놓고 있다.
김태익 기자
조선일보 1995년 5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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