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김용대

1995 원화랑 개인전 도록

김명희의 그림에는 시간이 있다. 특히 잃어버린 시간을 느끼게 한다. 지금 움직이는물리적 시간이 아닌, 사람의 생각이 연결되는 잴 수 없는 시간인 것이다. 이 시간은구체적인 형상을 가지고 화면이라는 평면적인 공간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밝은 소년의 모습에서 부터 평생을 한 가지 배역을 가지고 살아온 아낙네의 표정에이르기 까지 인간의 삶에 대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름 모를 꽃에서부터 구름, 나무, 소년, 들판, 하늘, 뱀, 닭, 6.25때 것으로 추정되는 미소의 탄피 등 생활의 주변에서 찾아낸, 발견된 것들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무생물이든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로써,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고 있다. 그것들이 활동했던, 관련되었던 상황과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어떤 새로운 일루젼을 보여주고 있다. 치밀하고 논리적인과정과 상상을 동원하고, 상화의 조합을 통하여 "인식의 기록자"가 되고 있다. 관찰과 체험을 통한 관점의 기록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결석한 소풍날>이라는 작품은 이러한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서, 당시 먼 영국 땅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참가하지 못했지만가상된 참가를 통하여 자기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현재 살고 있는 내평리작업실 {폐교된 초등학교 교실}에서 미국과 한국의 왕복을 몇 차례 하면서 느낀 생활 속의 느낌을 심도 있게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김명희라는어떤 개성이 마침내 강원도 38"선의 극지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location을 지켜야 된다는 강렬한 제안을 하고 있는데, 그것의 대안자로서 닭이나뱀, 동네 아주머니, 개, 여러 가지 역사적 기물 등이 있다. 이 화면속의 대안자들을자기와 현재의 상황을 지키는 12지신처럼 여기고 있다. 이러한 점은 대학원 시절에썼던 "화각공예에 나타난 문양화 연구" [석사학위 논문, 1975]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전통에 대한 깊은 관심과 더불어 무엇을 지키는"수호" 나 "기록자"에 대한 관심인것이다. 자연과 사라진 인간들의 영혼과의 만남을 시도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현실감과 폐교된 교실에서 살았을아이들의 이미지와 흔적으로 남아있는 칠판[기억]들과의 사이를 오가며, 진동하며작품은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작가는 "Power of Image")라는 말로서 함축 있게 표현하고 있다.

내평리 분교에 버려진 태극기, "멸공, 통일,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 열심히 살자,간첩신고" 등 당시의 흔적들이 아무런 표정 없이 버려져 있다. 잠시 동안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한다. 석기시대의 유물을, 탄피, 공, 아이들이 심었을 꽃…

이미 몇몇 시간의 앞선 시간들이 지나고 흔적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것들이 김명희의 무대에 나타난 배우들인 것이다. 또한 이 배우들은 김명희의 초상인 것이다.

사실 작가의 주된 관심인 기록화들은 상상의 세계인 무속이나 불교의 세계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motive는 사람이라는 어떤 messenger인 것이다.

이 상상화의 시점이 바로 dislocation인 것이다. Location을 찾아가는 작가의 과정이 반영되는 인식의 시점인 것이다. 흔적으로 남아있는 칠판은 단순히 object가 아닌 목격자로서의 의미인 것이다. 작가는 이 상황에서 물리적 시간을 뛰어넘은 체험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생활의 흔적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그것의 상황을 평상처럼 표현하는 김명희의 스토리인 것이다. 상황은 현재이고, 등장하는 이미지는 오히려 과거인 것이다. 낯선 상황에다 평상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관찰과 형상의 형식을 통해서 "새로운 relationship"을 나타내고 있다. Dislocation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의 사유형식은 추억과 상황을오가며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

추억은 인간의 직접적인 경험이 어떤 여과를 거쳐 새로운 날개를 가질 때 가능하다.이 날개는 상상력을 통해서 더욱 자기만의 독특한 형식을 동반하게 된다. 이 형식의구조를 김명희는 만들고 있으니, 이 한가운데 그의 사유형식이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추억이라는 씨줄과 상황이라는 날줄위에 어떤 상상이 개입되어 있다. 이 시점의location이 바로 내평리라는 곳이다. 그러나 이 location을 계기로 dislocation이라는 새로운 방법의 사유를 시작하고 있다.

치밀한 계산과 완벽에 이르려는 묘사적 방법과3자적 입장의 목격자로서의 태도를견지하고 있다. 현실과 이미지의 gap을 소통시키기 위해서 칠판이라는 인지된, 관념화된social code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dialogue의 연계를 통해서 자기의 스토리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추억과 형상, 그 속에서의 무엇.

이것은 소재에 대한 새로운 관찰, 새로운 critic, 새로운 관계를 추적해 보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아이들이 쓰던"공"이 화면에 부착되어 조형요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는 "상황, 발견, 해석"이라는 혼합된 상황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어떤 인식의 새로운 paradigm인 것이다. 동네 아주머니의 이미지를 차용하여여성의 역할을 하나의 새로운 시나리오로 엮어내어 소재의 전체성을 드러내고 있다.상황과 배우를 통하여 모든 것을 연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 흔적과이미지의 만남을 통하여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하고 있다.

태평양을 몇 번씩 건너다니면서 새로운 상황과 location에 대한 경험의 폭은 다각화를 가져오게 되는데 이러한 경험의 과정을 통해서 변하지 않는 인식을 발견케 되었다.

이것은 작가의 의식 저변에 까려있는 어떤 "상실감"에 대한 집착인 것이다. 이 상실감은 인식을 항상 움직이게 하면서 무엇인가를 찾아가게 하는 것이다. 시간을 찾아가는 계기가 바로 생활과 상황 속에서 의미를 부여받은 소재들이다. 다시 말해 시간의 소재를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치밀한 묘사적 기법마저도 이러한 시간의 추적과 무관치 않다. 인식과 방법 그리고 본능적이고 자동기술적인 묘사 등이 하나의 양식을 이루고 있다. 소재를 통해서 인식이 출발되고 거기에 논리를 보충하고 추측된상황을 개입시켜 시간의 기록자가 되려는 것이다. 나아가 찾아가려는 관찰자적 입장을 취하면서 단순한 추억의 기록자가 아닌, 역사 속에서 사라지려는 인간들의 갇혀진 희망을 새롭게 기록하는 목격자가 되려하고 있다.

그림이라는 그림자, 이것이 바로 김명희의 생각이고 critic인 것이다.

현실적인 소재에서 얻어지는 많은 지신들을 갇혀진 지신이 아닌 새로운 지신으로해석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 변함없는 김명희의 역할에 시간이라는 물리적 양태가 방해자인 것처럼 개입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