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의 알레고리 수사학과 페미니즘 정치학
화가 김명희(b.1949)는 한국 여성 특유의 경험을 젠더 정체성, 여성의 주체성 문제로 확장시키며 페미니즘 비평의 대상이 된다. 개인 서사를 집단 신화와 공동체 상징으로 승화시키며, 자전을 탈자전화하는 그의 양면적 감성은 무엇보다 문학적 감성과 인문학적 관심, 그리고 역사 인식에 의거하고 있다. 그러한 한편, 그러한 감성은 장기간 해외 생활을 한끝에 아직까지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이동, 방랑의 체험자로서 터득한 다문화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명희는 1990년, 작고한 남편 김차섭 화백과 십오 년간의 뉴욕 생활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귀환하였다. 미국 물질 문명의 병폐를 목격한 이들은 차라리 강원도 오지 내평리의 폐교를 정착지로 선택했다. 내평리에서의 삶은 우연한 선택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이자 실존적 결단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인류학적 성찰과 문화적 기억을 안겨 준 여행의 소산이었다. 뉴욕 체류시 재충전을 위해 미국 중남부, 멕시코, 이집트로의 고고학 여행을 시작했고, 1997년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한민족의 강제 이주사를 추적한 중앙아시아 탐사 여행을 감행하면서 삶의 진로를 설정했던 것이다. 2022년 김차섭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들 부부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과 작업을 병행하는 유랑적 노마드의 삶을 이어 왔다.
김명희는 이주, 유전, 탈향, 분단 등, 소수민족의 역사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내평리 폐교에서 무너진 과거를 되살려내는 초혼적 예술 행위로 환원시켰다. 발상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폐교에 버려진 칠판의 발견이었다. 칠판은 소외와 뿌리 뽑힘의 현장인 폐교의 의미를 요약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기억의 저장소로, 작가에게 화판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김명희는 일련의 칠판화를 통해 쓰기와 지우기를 반복하는 칠판에 ‘그때 그곳’의 초등학교 아이들과 ‘지금 여기’의 자신을 병치시켰다. 그로써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상실감을 회복하고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재생시키는 기억의 지층을 형성한 것이다. 인간의 삶과 역사적 현실을 성찰하게 만든 칠판의 존재를 통해 그는 자신이 정착지로 선택한 폐교를 자연적 장소에서 실천적 공간으로 전환시켰다.
과거와 조우하는 낡은 칠판으로 칠판화를 창안하고 그것을 자신의 고유한 양식으로 ‘정착’시킨 창작의 산실을 바로 그 폐허 위에 세운 것이다. 폐허의 잔재에서 초시제적 예술품이 된 칠판화는 일시성을 영속화하고 무상함을 기념비화하는 문화적 은유이자 장소적 환유로서 알레고리를 획득한다. 또한
알레고리가 과거의 이미지를 차용해 과거를 현재로 재생시키려는 복고적 의지를 갖듯이, 김명희의 칠판화는 원래의 모습이나 의미를 상상력과 환상으로 변형하거나 대체하는 맥락에서 뚜렷한 알레고리 특성을 보인다. 김명희 칠판화의 알레고리 양상은 사진전사 수법을 통한 극사실적 화풍으로 효력이 배가된다. 김명희는 오래전부터 종이에 연필, 목탄, 수채 등 가벼운 스케치용 매체로 정밀묘사 기법의 형상화를 그려 왔다. 칠판화에서도 이와 유사한 백묵, 크레용, 오일 파스텔을 사용하여, 그린다기보다는 그윽하게 흔적을 남기는 묘사적 필치로 섬세함과 정교함을 극대화했다. 그는 실제보다 더 리얼한 정밀묘사로 현실과 현상을 초과하는 상징성을 확보하는 한편, 리얼리즘을 특정하는 상상력으로 리얼리즘을 초월하는 자신만의 ‘상상적 리얼리즘’ 양식을 창안하게 되었다. 상징과 상상의 국면에서 인간의 원형 또는 ‘데자뷔’적 비전을 일깨우는 알레고리가 발생하는데, 이는 푸른색 칠판의 바탕면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초현실적이면서도 전통 종교화의 배경과 유사한 추상성을 발생시킬 때 그 효과가 증폭된다.
사실과 상상의 이중성, 현재와 과거의 통시성을 근간으로 하는 김명희의 알레고리는 재현 대상을 현실의 맥락으로부터 고립시켜 기념비성을 강조한 인물화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그가 그리는 인물은 내평리 주민들과 아이들, 현존하는 인물들인 동시에, 과거의 상실을 극복하고 미래의 비전을 암시하는 상징적, 상상적 인물들로 구현된다. 오지까지 소식을 날라 주는 고마운 〈우체부〉(1994)는 상실과 회복의 교량 역할을 하는 메신저를, 〈희철이 어머니〉(1994)는 도시 문화로부터 소외된 채 묵묵히 농사 노동을 하는 농촌의 아낙네를 표상한다. 어린 시절 갈 수 없었던 여행을 상실로 은유한 ‘내가 결석한 소풍날’ 연작(1987–2008)은 칠판화의 상상적 의미를 요약하는 가장 대표적 작품이다. 〈보트 피플(Boat People)〉(2001)은 북한에서 귀순한 탈북자의 사건을 주제로 픽셀 처리한 가운데 탈북자 이미지의 양옆으로 엘씨디(LCD) 모니터와 함께 분단 이전의 한반도의 지도 그림을 좌우로 배치한 대형의 칠판 삼면화이다. 이 그림에 나오는 좌우 한 쌍의 지도를 반복하듯, 2003년에는 동일한 아이를 모델로 삼은 한 쌍의 그림 〈북서에서 온 아이〉와 〈남동에서 온 아이〉를 제작했다. 분신 같은 남과 북의 아이들로 하나된 한반도를 상상하는 알레고리화이다.
1997년 한민족의 강제 이주사를 추적하기 위한 중앙아시아 탐사 여행은 작가에게 뿌리뽑힘의 역사를 성찰한 기회를 마련했다. “왜 한민족은 제 나라 땅에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만주, 사할린, 일본, 독일, 카자흐스탄, 월남, 중국, 미국 등으로 ‘디스로케이트(dislocate)’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지난 한 세기 우리의 역사는 가난, 전쟁, 정치적 폭력, 문화적 뿌리 뽑힘으로 인한, 농경 사회의 붕괴로 인한, 또 배고픔으로 인한 ‘디스로케이트’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김명희, 「디스로케이션(뿌리 뽑힘)의 역동성」 『월간미술』, 1997. 6.) 이와 같은 민족적 역사 인식에서 그는 한반도를 넘어 블라디보스톡, 이르쿠츠크, 타슈켄트, 사마르칸트를 잇는 북방 대륙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 그의 칠판화는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라는 슬픈 역사의 질곡을 담아낸다.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을 배경으로 한인 소녀를 그린 〈강요된 유전〉(2002), 다중적 상징을 함의하는 복숭아로 이산 소녀들의 아픔을 강조한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1999), 한복을 차려입고 태극선 부채를 든 러시아계 혼혈 여성으로 이산의 현실을 피력한 〈혼혈〉(1999)에서 작가는 디아스포라의 증인인 어린 소녀들을 한복을 입은 상상의 인물로 재현한다. 한복은 물론 그림 속의 자작나무, 복숭아, 부채는 역사적 기록화를 알레고리로 변형시키는 상징적 소재들이다.
상상에 의거하는 알레고리 여성 초상은 김명희 작품세계의 한 축을 이루는 중요한 페미니즘 요소로 이미 1980년대 중후반부터 제작되었다. 초기의 여성 초상은 미술사에 등장하는 신화적인 여성과 현대 여성을 유비시키는 이중 이미지 수법으로 형상화됐다. 〈사빈느의 약탈〉(1986)에서는 푸생의 그림에 묘사된 강탈당하는 나약한 여인과 뉴욕의 건장한 백인 현대 여성을, 〈뛰는 여인〉(1987)에서는 베르니니의 다프네의 모습을 여자 마라톤 선수와 병치시켰다. 이 시기 작가는 차후 자화상 연작의 효시가 된 〈끝없는 생각〉(1987)을 제작했다. 부엌에서 마늘을 찧고 있으면서도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자신을 풍자한 이 작품에는 푸생이 그린 토가를 입은 로마 원로원 의원이 벽에 걸린 액자처럼 삽입되어 있다.
초기의 여상 초상에서부터 시도되었던 유비적 병치에 의한 이중화 수법은 2000년대 이후 자화상 연작에서 그림 속의 그림 또는 액자 그림 형태로 양식화되었다. 〈김치 담그는 날〉(2000)에서는 자기 마음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영상과 『오륜행실도』의 「열녀도」 글귀를 자기 초상과 병치했다. 〈다림질〉(2006)에서는 거울에 비친 김차섭의 지도화와 자신의 모습이 그림 속 액자로 등장하고 있으며, 〈김치를 만들며〉(2009)와 〈차(茶)〉(2004)에는 각각 고어체로 씌어진 조선시대의 음식 디미방 요리책과 절개를 강조한 ‘도미 부인’ 설화가 고어 그대로 삽입되어 있다. 고전 이미지나 고사를 인용하여 자신의 이미지와 병치하는 이중 장면 수법으로 예술가와 주부로 양분된 이중 자아를 은유하는 것이다.
보편적 여인의 초상이기도 한 이 일련의 자화상에서 우리는 그가 중앙아시아 실향민 소녀들에게 느꼈던 동질감과, 여성적 연대를 꿈꾸는 페미니스트 김명희를 발견한다. 그의 페미니즘은 문명 비판적 주제의식, 여성적 소서사의 등용, 여성 특유의 통찰력,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섬세한 여성 양식으로 뒷받침된다. 1975년 형상화 미술 운동인 ‘표현그룹’에 합류한 사실이 말해 주듯, 그는 상상적 리얼리즘에 근간한 알레고리 화풍으로 여성 형상화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김명희의 작품세계는 삶과 예술이 하나의 총체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을 자신이 영위해 온 삶의 양상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부계 사회의 차별 이데올로기 속에서 여성 작가의 인생 경험이 창작 활동의 반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가가 사적 경험을 중시하고 자전적 서술 양식을 선호하거나, 대서사보다는 소서사에 경도되고, 직설화법보다는 은유와 상징의 우화적, 묵시적 수사학을 택한다면, 그것은 삶이 그에게 가르쳐 준 여성적 창작 방식이자 주류 남성 미술과의 차별화를 이끌어낼 여성적 자각의 반영일 것이다.
김명희는 마음의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의 삶, 그럼에도 세계 곳곳 어디에나 마음 붙일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않는 해방적 삶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의 작업은 치열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하며 역사적 통찰로 ‘지금/여기’의 현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단편적인 것을 총체적인 것으로 완결시키는 알레고리적 충동, 자의식을 공동체 의식으로 확장시키는 타자애를 통해 김명희는 여성이자 예술가로서 남성 중심의 화단에 개입한다.
*출처: 김홍희, 『페미니즘 미술 읽기: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 열화당, 2024. 271-292쪽 「알레고리 형상—김명희, 김원숙, 조영주」 중 ‘김명희’ 부분을 발췌, 편집, 수정함